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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우리는 삶을 기본적으로 무겁게 생각한다. 그리스 비극에서 말하는 운명은 대표적인 무거움의 세계이며 거기에서 무거움은 인간다움의 가치로 간주되었다. 인간이 아무리 피하려 해도 인간을 짓누르는 운명, 그리고 그 운명에 결국은 굴복하고 마는 주인공들의 삶은,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운명을 꿋꿋하게 견디기 때문에 비극적이면서도 위대한 삶으로 조명되곤 한다.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저자 밀란 쿤데라는 무거움을 견디는 일의 가치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이 무거움의 세계에 대비하여 가벼움의 세계를 부각시킨다. 그리하여 무거움과 가벼움은 인간의 현실을 지탱하는 두 축이 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의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이 소설의 영문판 제목은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참고 견뎌야 하는, 하지만 참을 수 없는 것은 자기 밖의 어떤 것이 아니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존재가 가벼운 것이 역겹고 괴로워서 존재의 가벼움을 품고 있으려 해도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뜻이다.
주요 등장인물 네 사람 가운데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은 외과의사 토마시다. 그는 품고 있을 수 없는 가벼움을 수많은 여자들과의 ‘에로틱한 우정’을 통해 발산한다. 에로틱한 우정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관계다. 토마시의 그런 생각을 잘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사비나다. 왜냐하면 그녀 또한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짓눌려 가벼움의 드라마를, 배반의 드라마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토마시 앞에 테레자가 나타난다. 테레자는 육체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어 필사적으로 영혼에 매달린다. 보헤미아 시골 카페에서 일하던 그녀는 테이블에 책을 올려둔 유일한 손님인 토마시에게 음료를 가져다주는 순간 베토벤의 운명이 흘러나왔다는 사실 등 이어지는 몇 차례의 우연을 ‘우연의 부름’으로 여긴다.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우연은 인간의 의지나 의도와 상관없이 뜻밖에 주어진다는 점에서 피안의 섭리를 느끼게 하고 운명적인 필연을 부여한다. 무거움, 필연성, 그리고 가치는 내면적으로 연결된 세 개념이다. 필연적인 것만이 진중한 것이고, 묵직한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프라하를 떠나 취리히에 정착한다. 그러나 토마시에게는 자기에 대한 테레자의 사랑이 마치 그의 발목에 채우는 방울 같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여성 편력 때문에 외로움을 느낀 테레자가 프라하로 돌아갔을 때 그리스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가 이야기한 마술적 공간에 들어가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을 만끽한다.

그런데 왜 그는 테레자에게 다시 돌아가는 걸까? 그것은 동정 때문이다. 쿤데라는 토마시가 테레자에게 느낀 동정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동정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라틴어로 compassion은 타인의 고통을 차마 차가운 심장으로 바라볼 수 없는 ‘연민’과 비슷한 뜻을 가진다. 하지만 compassion에 해당하는 영어의 ‘sympathy’는 감정을 함께 나눈다는 점에서 ‘공감’의 의미를 수반한 ‘동정’이다.

그러므로 sympathy를 갖는다는 것은 타인의 불행을 함께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동정은 고도의 감정적 상상력, 감정적 텔레파시 기술을 지칭한다. 동정심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우리 자신의 고통조차도 상상력으로 증폭되고 수천 번 메아리치면서 깊어진, 타인과 함께, 타인을 위해, 타인을 대신해 느끼는 고통만큼 무겁지는 않다.


토마시가 느끼는 동정은 후자에 속한다. 테레자가 떠난 직후 느꼈던 달콤한 가벼움은 곧 테레자가 이별의 편지를 쓰며 겪었을 감정을 느끼는 순간 무거운 고통이 되어 그를 짓누른다. 취리히에서의 안정된 의사 자리를 포기하고 그녀가 있는, 정치적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는 프라하로 되돌아가 유리창 청소부 일을 하는 그의 행동은 젊은 남녀 간의 인연이 단순히 일시적인 쾌락만을 좇는 것도, 한낱 덧없이 흘러가는 가벼운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제 또 다른 두 명의 등장인물 프란츠와 사비나에 대해 살펴보자. 두 사람의 관계 역시 무거움과 가벼움의 대립이다. 대학교수인 프란츠에게는 정조가 모든 덕목 중 으뜸이다. 정조는 무거움의 세계에 속한다. 그에게서 정조를 지키는 삶이란 거짓이 없는 삶, 진리 속에서 사는 삶이다. 정조는 충직이요, 가장 바람직한 가치이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그들이 없는 곳에서의 모습과 같아야 한다고 믿는다.

반면 사비나에게 정조는 권태를 뜻한다. 화가인 사비나는 주어진 선 밖으로 나갈 때 자유롭고 생기가 돈다. 이미 항상 그렇게 되어온 것에 편승하는 삶에서는 삶의 비밀을 찾을 수 없다. 프란츠는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거짓 없이 다 드러내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나 사비나는 타인의 시선에 자기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이미 거짓이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여긴다.

프란츠는 더 이상 거짓 속에서 살지 않기 위해, 사비나에게 정조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떠난다. 그러나 사비나는 자신이 거주하는 가벼움의 성에 프란츠의 정직한 무거움이 파고드는 것을 견딜 수 없어 그를 떠난다.

존재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미학이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세계는 천한 것 혹은 하찮은 것이 없는 세계다. 우아하고 품위 있고 조화롭고 세련된 것이야말로 미학이 존재 안에서 추구하는 이상이다. ‘똥’은 정확히 그 반대편에 속한다. 그래서 미학적 이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똥이 거부되어야 한다. 똥은 가려져야 한다.

여기서 똥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신하는 세계가 ‘키치’다. 바꿔 말해 키치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다른 것으로 가리는 것, 위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키치는 무거운 세계를 가볍게, 반대로 가벼운 세계를 무겁게 포장하는 것이다.

사비나가 토마시를 ‘키치와는 정반대의 인물’로 일컫는 이유는 토마시가 가벼움을 추구하는 자신의 성향을 위장하지 않고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권위를 상실한 키치는 모든 인간의 약점처럼 감동적인 것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초인이 아니며 키치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면이 벗겨진 키치는 감동적이다. 근엄한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아버지의 실상을 보게 되는 경우의 감동과 같다. 진실은 항상 감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라하고 약한 뒷모습이 진실이고 또한 그 뒷모습의 확인이 감동을 준다고는 해도 그 진실은 어쩔 수 없이 무거우며 그 무게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보편적인 욕구다. 이렇게 볼 때 삶에서 키치는 불가피하다. 평생 키치와 싸워왔던 사비나조차도 가슴 깊은 곳에 행복한 가족을 꾸미는 것에 대한 환상을, 행복한 삶이란 마땅히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동의로서의 키치를 품고 있다.

우연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테레자와는 달리 그녀를 따라 무거움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으면서도 우연이 과연 필연인지 의심했던 토마시는 마침내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우연의 연속에서 생겨난 그녀와의 관계가 그녀에 대한 진정한 사랑으로 깊어지면서 무거움에 한 발을 걸쳐놓은 관계가 무거움을 넘어서는 관계, 무거움과 가벼움의 화해로 발전한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토마시와 테레자 두 사람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시내 호텔로 춤을 추러 가는 장면이다. 춤을 추면서 테레자는 토마시에게 자신이 그의 삶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렸다고 자책한다. 하지만 그녀의 자책에 대해 토마시는 말한다. “테레자,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당신은 모르겠어?”

자신의 의사라는 직업이 깊은 내면의 욕구에 따른 것이라 믿었던 그가 병원을 그만두고 유리창 청소부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어떤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그것이 아름답다 생각했다. 그는 위대한 필연성에 의해 인도되지 않은 직업에 종사하며 일단 일을 끝내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사람들의 행복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또한 토마시가 테레자와 시골로 내려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발견한 평화와 행복은 관계의 가벼움을 버리고 직업의 무거움을 버린, ‘무거움과 가벼움의 화해’에서 온 선물이었다.

“누구나 인생을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떤 비교도 어떤 선택도 무의미하고 덧없다.”라고 생각했던 토마시에게 테레자와의 삶은 한 번의 삶, 단 한 번뿐이기에 참으로 소중한 삶이고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삶이 된 것이다.

사비나가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편지를 읽었을 때 놀랐던 것은 토마시의 그런 변화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끔 이웃 마을에 가서 호텔에 묵었다. 편지의 이 대목이 그녀에겐 충격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행복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사비나에게 토마시는 여성 편력으로 유명했던 돈 후안이 아니라 이졸데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친 트리스탄으로 죽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한다. ‘테레자와 토마시는 무거움의 분위기 속에서 죽었다. 그러나 나는 가벼움의 분위기에서 죽고 싶다. 그 가벼움은 공기보다도 가벼울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에 따른다면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화해를 통해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발견한 두 사람과는 달리 사비나는 마지막까지 가벼움의 세계에 머물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다.

- 『행복한 뫼르소』 중에서
(유헌식 지음 / 아카넷 / 328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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