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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람과 둘째 사람
성경은 단순하게 아담과 그리스도, 두 사람의 이야기라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첫 사람’으로 불리는 아담과 대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둘째 사람’으로 묘사하지요. 성경은 그 첫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이루어 드리지 못한 실패의 이야기이고, 다른 한편으로 이 절망적인 상태에서 첫 사람을 구원하고 그를 대신하기 위해 오신 둘째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둘째 사람을 향한 첫 사람의 지독한 적개심과, 그에 반해 첫 사람을 향한 둘째 사람의 사랑과 구원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는 이야기입니다. 아담은 오늘날에도 살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편 첫 사람과 둘째 사람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첫 왕과 둘째 왕인 사울과 다윗의 역사 속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사울에게서 아담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윗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울과 다윗 사이의 불편한 관계 속에서 우리와 예수님 사이에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는 여러 현상을 투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에 의해 온갖 고난을 겪지만, 우리는 사울을 향한 다윗의 꺼지지 않는 사랑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광대한 사랑을 어렴풋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침내 사울 가문이 전쟁에서 패하여 완전히 깨졌을 때 사울 가문의 남은 자손들에게 다윗은 지극히 넓고 관대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은 아담의 자손인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절망의 끝에 다다랐을 때, 우리를 향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한 폭의 그림처럼 보게 합니다.

사울은 다윗이 자기 대신 골리앗과 싸워서 승리했을 때 아주 기뻐했지만, 다윗이 자신을 대신하여 왕위를 차지할 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심히 불쾌했습니다. 사울은 있는 힘을 다하여 끝까지 그것을 거부했고, 결국 그의 끈질긴 거부로 인해 그의 삶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 대신 치르신 것에 대해서 매우 기뻐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는 것에 대해서는 썩 마음 내켜 하지 않습니다. 다른 왕을 위해 한 왕이 기꺼이 왕좌에서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사울과 아담처럼 우리도 이 부분에서 실패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당한 자격으로 왕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서 행동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는 것과, 자기중심적인 자아를 모두 내려놓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사울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늘 자기중심적인 선택을 합니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이 우리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일터에서 일어납니다. 우리의 뜻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그것이 무시되었다고 생각할 때 분노를 터뜨립니다. 타인의 필요에 대해 세심하게 마음을 쓰지 않고 자신의 만족과 향상을 위해서만 행동합니다.

반면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인정을 받은 왕입니다. 하지만 그도 인생 대부분의 기간에 자신의 심복인 요압과 아비새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해야만 했습니다. 요압은 사울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이 모든 이스라엘을 다윗의 편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다윗과 협상을 막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요압은 다윗이 그의 원수인 아브넬에게 친절을 베푼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했습니다. 이러한 무자비함은 요압뿐만 아니라 아비새에게서도 똑같이 발견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다윗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자들이었지만, 다윗이 말한 대로 그들은 다윗에게 ‘제어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자들’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들을 나무라고 그들의 행동과 태도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면서, ‘왕이지만 온유한’ 그의 진정한 성품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와 같은 왕을 좋아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그들의 가공할 만한 열심 때문에 예수님을 너무나 힘들게 하는 요압과 아비새 같은 이들을 여전히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무정함은 그들이 행동하는 방식에서 나타납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주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발견하면, 사랑하는 것은 잠시 쉬고 ‘일격을 가해도 되는’ 완벽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서로에게 아주 무례하거나 불친절하게 될 수 있음에도, 주님의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사랑의 결핍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줄 수 없습니다.

온유한 다윗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어린 양’은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 가장 온순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자신을 낮추신 지극히 겸손하신 자를, 그리하여 온 세상을 다스리시도록 보좌의 가장 높은 곳에 올리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그 보좌에 대한 성격을 알려주고, 우리가 길에서 벗어났을 때 되돌아가야 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보여줍니다.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으로서의 예수님 모습 외에 우리가 추구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중에서
(로이 헷숀 지음 / CLC / 296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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