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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하신 성령께서 우리 영으로 더불어
당시 군인 교회의 목사였던 내게 한 여학생이 상담을 하고자 찾아왔다. 중학생이었던 그 아이는 연필 마술을 하다가 우연히 귀신과 동거하게 되었다. 귀신과 대화를 하고, 함께 학교에 가고, 귀신과 속삭이며 잠이 들었다. 귀신의 목소리를 받아 적어 의사소통을 했다. 처음부터 귀신의 존재를 믿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만나기를 원하던 죽은 어느 가수의 친근한 ‘영혼’이라고만 믿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이와 귀신의 내적인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악한 귀신의 역사라고 말했을 때 그 학생은 나의 이야기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귀신을 대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밖에 없다는 말을 받아들인 그 아이는 내가 준 성경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때부터 귀신의 돌발적 충동은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귀신은 이 아이를 저주하며 죽으라고 말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 귀신을 착한 영혼이라고만 믿었던 아이는 심각하게 놀라고 상처를 입었다. 아이에게 이상하고 위험한 증상을 느낀 부모가 교회에 아이를 데리고 찾아와서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하며 애원했다. 나는 아이의 몸속에 그 자신의 인격과 더불어 귀신의 인격이 공존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귀신은 그 아이를 모조리 통제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했다.

나는 아이를 놓고 특별기도 모임을 시작했다. 우리가 기도와 말씀으로 대적하는 동안, 귀신은 경악하며 두려움에 소리를 내질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이 스스로도 믿음과 담력을 가지고 자신의 목소리로 그 귀신을 대적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두 주간에 걸친 치열한 영적 전쟁 끝에, 아이의 몸에서 모든 악한 귀신을 몰아낼 수 있었다.

사탄이 살아 있는 사람을 장악하고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그 태생과 존재 방식이 강박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성령께서 우리의 인격에 거하시는 방식은 귀신의 거주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온유하신 성령은 우리 영을 결코 강제적이고 비인격적인 힘으로 통제하려 하지 않으신다. 비록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하게 내주하신 상태라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자아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성령의 역사 역시 “양(羊)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려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심으로써 우리의 자존감을 회복시키신다.

성령은 온유하시되, 인간의 인격 범주로 이야기하자면 매우 내성적이신 것 같다. 성령님은 우리를 강압하시는 대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는” 분이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권고한 것으로 볼 때,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모습 때문에 고민하며 근심하시는 분인 것이다. 우리 영과 더불어 아픔을 함께 겪으시며,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심으로 일하시는 분이다. 그 과정에서 성령님은 부족한 우리의 인격과 의지를 한없이 존중하시고, 우리의 모자람에 대해서는 인내하며 기다리신다. 우리가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사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성령님의 이러한 성품과 일하시는 방식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목자와 양을 생각할 때 우리는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을 상상하나, 양 떼를 가까이에서 직접 보면 생각처럼 그다지 깔끔하지 않다. 냄새가 나고, 때로 고집이 세어 말을 듣지 않는다. 강박적 성격의 사람은 깔끔하고 산뜻한 이론만을 추구하며, 냄새나고 질서 없는 양 떼와 같은 인간 경험의 무질서를 참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돌보고 섬겨야 할 사람들의 삶은 가치의 혼돈과 덧난 상처로 덮여 있다. 이때 강박적 성격의 사람은 남의 사정을 묻지도 않은 채 쉽게 사람을 정죄한다. 고난과 갈등 가운데 있는 이들, 우울증 같은 혼란스러운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이들의 아픔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오직 이론과 자기논리로만 인간을 강압하는 것을 강박적 성격장애라고 부르는데, 이는 다분히 사탄적이다.

한 영혼을 돌볼 때 필요한 것은 이론에 대한 집착보다 한 영혼에 얽힌 인생에 대한 깊은 관심이다. 예수께서는 선한 목자로서 이처럼 지저분한 양 떼를 가슴에 품으셨다. 예수께서 세리나 죄인 혹은 창녀와 교제하셨을 때, 예수께서 가지셨던 것은 산뜻한 율법 이론이 아니라 죄인을 있는 그대로 품으시는 용기와 행동이었다. 그분은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함께 느끼며 그들과 함께하셨다. 성령께서도 사람들의 마음과 형편을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공감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감을 통해 사람들의 실패와 혼란과 상처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안을 때 비로소 치료가 일어난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의 이론과 인위적인 법에 강박적으로 충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죄와 질병, 가난과 죽음의 정돈되지 않은 인간의 삶에 뛰어들어 오셔서 그들을 치료하시며 구원하셨다. 율법을 무시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 위에 계셔서 그 법을 사랑으로 완성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넘겨졌다. 십자가는 지금도 세상의 혼란과 어지러움을 대면한다.

- 『강박적인 그리스도인』 중에서
(하재성 지음 / 이레서원 / 355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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