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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말의 동거
민들레꽃이 한 송이 피었다. 작년에 차를 만들다 뿌리가 살아 있어 화분에 옮겨 심어 놓았더니 올해에 다시 꽃이 핀 것이다. 한 촉 올라온 황금빛 꽃송이가 고요하고 아름답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낯선 곳에 이사 와 얼마나 힘들었겠나. 투정 한 번 안 하고 엄살 부리지 않고 의젓하고 완벽하게 한 송이 아름다움을 완성하다니.

어제 오늘 세상에서 날아온 소식들로 마음이 분주하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토마스 머튼의 영적 일기: 요나의 표징』을 읽었다. 이 수도사는 고요한 평화를 찾아 수도원에 들어왔는데, 공동체에서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까닭에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화두는 고요함을 향한 열정적 갈망이 뒤섞여 버리는 공동체와 요동치는 존재의 바닥에서 어떻게 내적 고요함을 얻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수도원 생활의 후반으로 갈수록 그는 자신의 갈망에 초조해하거나 섣불리 그 갈망을 해소시키려 하지 않았다. 갈망이 채워지지 않는 사막을 인정하며 어둠 속에 머물러 있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하느님은 자신이 그토록 찾아다니던 평화나 고요에 한정되는 분이 아니라, 고통과 기쁨이며 동시에 갈등과 대립이며 화해와 통합이라는 걸 깨닫고, 일면 모순되는 것 같은 대극이 존재하는 이 모든 순간에 다른 형태로 우리 안에 현존해 계신다는 걸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우리가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자신과 자기 시대의 시련과 고통에 대해 과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며, 그것을 인식함으로써 소박한 생활 안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과 기도, 관계 맺음과 혼자 있음이 하나의 물줄기를 이어 갈 수 있다면 갈등이라는 것도 별것 아니겠다. 일을 도모하는 것과 자기의 내적 공간으로 물러나 있는 것은 모순되지 않을 것이다. 만남과 혼자 있음이라는 상반된 경계에서 평온할 수 있다면 사실 모든 순간이 기도가 되겠다. 움직임과 고요함이 박자를 맞추며 현존할 때 내 안에 고인 옹달샘 물이 세상으로 자연스레 흘러갈 것이다.

사람이든 이상이든 평생을 나서서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고, 평생을 자기 자리에서 우연처럼 마주치며 손님처럼 맞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찾아다니면서도 목마르고 한자리에 머무르면서도 촉촉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 목마른 채 떠도는 자가 닿지 못한 갈망과 그리움이 있어 충만할 수도 있고, 한곳에 붙박여 풍요를 누리는 자가 오랜 관성과 포기가 낳은 무감각 속으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

떠돌면서도 평화롭고 붙박여서도 충일한 자유 속에 현존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디에 있든 누구와 살든 자기 내면에 전념할 수 있다면 어디서나 자유로울 수 있겠다. 어느 정도의 침묵과 가난 그리고 일정 정도의 고독과 육체노동, 독서와 수행으로 일상을 채울 수 있다면 혼자서도 외롭지 않을 게다. 완전한 공동체와 완전한 장소 그리고 완전한 관계 등을 찾아 떠돌아다니지 않을 수 있다면 그는 지금 이 자리에서 평화를 누릴 것이다. 아니, 모든 종류의 이미지로 장식된 관념 속의 완전함이라는 헛된 희망을 포기할 때만이 지금 여기서 진정한 행위 속에 편안히 거할 수 있겠다.

우리의 에고가 작동하는 감각은 만족할 줄 모른다는 특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아닌 저것’을 원하고,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바란다. 늘 지금 이곳이 아닌 무언가를 원하고 갈망하기 때문에 이 시간 이곳이 희생당한다. 불안하고 두렵고 짜증 나고 못마땅한 처소가 되기도 한다. 소음과 고독이 동거하는 지금 이 세계에 머물러야겠다. 일하면서도 침묵하고 물러나 있으면서도 고요히 참여하는, 구분이 되지 않는 마음자리에 머물러야겠다. 형상에 끄들리지 않는 마음자리에서 비롯된 침묵은 말이 막히는 것이 아니라 통하는 것이고, 침묵 속의 기도는 동료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타오르는 고요한 사막인 것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침묵과 고요와 어두운 사막 안에서 투명하게 타오르고, 생의 모든 순간이 진정한 친교의 시간이 되기를. 앞질러 미리 근심하거나 안달하지 않고 오늘 하루치의 수고를 다하기를. 아무것도 이름 붙이지 않고 이름 이전의 자리에서 대수롭지 않은 일에 최선을 다하기를.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소박하고 단순한 일에 마음과 몸을 안착시키며 이 아침, 아 처음이어서 늘 새로운 아침 땅에서 처음처럼 시작하겠다.

-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 중에서
(김해자 지음 / 아비요 / 348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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