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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는 오로지 자신만을 만날 수 있다
다시 고비사막을 찾은 것은 한 해가 지나고서였다. 밤마다 모래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은빛 밤하늘의 별들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게르의 천창에 떠 있는 별을 다시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사막으로 다시 떠나게 된 것은 오로지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똑같은 곳을 두 번이나 연이어 찾아갈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거나 아니면 후회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남기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느닷없이 다시 사막으로 나를 이끌었다.

사막은 누군가에게는 어디를 가든 다 똑같고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또 어떤 이에게는 이제까지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공간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잃은 자는 그 자리에서 신을 만나게 된다고 했다. 오랜 경전의 시편들은 그렇게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상실감 뒤에 오로지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신과 나 그리고 그 무엇인가를 마주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사막이었다.

사막에 들어가려면 역시나 바위샘물로 두 눈을 씻어야 한다. 그런데 사막으로 들어가는 첫날에 그 의식을 치르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였는지 저물녘에 몰려온 구름은 첫날부터 별을 보여 주지 않았다. 나는 지난해와 같은 캠프, 같은 자리에 텐트를 치고 느긋이 석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와인 대신 내가 가져온 것은 고요였다. 침묵이었다. 그런데 종일 뒤를 따라온 구름이 서쪽에서 더 많은 구름을 데리고 몰려오고 있었다. 벼락까지 쳤다. 먹구름 아래 진분홍색의 벼락이 내리치고 있었다. 끝내 별을 보기는 틀린 것 같았다.

다음 날 저녁, 어르형 폭포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별을 찍으려고 삼각대를 내다 놓고 준비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신기한 듯 다가왔다. 아이는 북두칠성을 가리키며 이름을 말했다. 그 발음이 무척 낯설어서 나도 별을 가리키며 발음을 따라 해 보았다. 아이는 내 어설픈 발음을 몇 번 교정해 주었다. 북두칠성을 찍어서 아이에게 보여 주자 재미있다는 듯 한참을 액정 화면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라비아에서는 북두칠성이 관을 메고 가는 모습으로 보였다. 중국에서는 북두칠성을 인간의 죽음을 결정하는 별로 인식했다. 이곳에서도 역시 북두칠성은 저승의 별이었다. 이곳의 설화에 따르면 북두칠성은 황금막대기에 묶어 놓은 두 마리 황색 말을 지키기 위해 일곱 명의 노인이 주위를 돌고 있는 모습이라고 했다. 아이와 내가 올려다본 곳은 일곱 명의 노인이 밤새도록 두 마리의 말을 지키고 있는 세계였다.

돌론 보르항. 아이가 알려 준 북두칠성의 이름은 돌론 보르항이었다. 일생을 다 마치고 비로소 돌아가게 될 죽음의 세계, 돌론 보르항. 그러나 그곳은 신들이 두 마리의 말을 지키듯이 내 영혼을 황금막대기에 고이 묶어 둘 수 있는 곳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저 별은 방랑자의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이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신들이 내 영혼을 지켜 줄 수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니!

고구려인도 북두칠성을 보고 자신이 태어난 곳이라고 믿었다. 그러니 누구나 죽어서 관 바닥에 그려 넣은 칠성판을 지고 북망산천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나도 아이도 언젠가는 그렇게 저 별로 가게 될 것이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면서도 별 하나를 두고 아이와 나는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 자신이 태어난 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손짓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 긴 초원을 지나 마지막 캠프에 짐을 풀었다. 나는 마지막 밤을 여전히 별을 기다리는 것으로 맞이하려고 했다. 먹장구름이 몰려왔다. 그래도 나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기다리고 있었다. 북극성이 구름 사이로 보이는가 싶더니 온 밤하늘이 완벽한 어둠 속에 갇히고 말았다. 검은 휘장이 드리워졌다. 그래도 나는 게르 앞에 의자를 내어 앉아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별이 뜨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어떤 의례를 치르듯이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만 있었다.

“때로는 자기에게서 도망치고, 때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존재 - 그러나 너무나 호기심이 강해, 언제나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존재…….”(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그런 인간으로 나는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나에게로 탈주하고, 위험한 비밀에 사로잡혀 있다가, 급기야 자기 앞에 놓인 창백한 어둠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야만 하는 그런 인간으로.

어둠뿐이었지만, 나는 이 마지막 밤이 오히려 찬란했다. 나는 돌아갈 것이다. 이 어둠을 안고서 나는 돌아갈 것이다. 아득하니 먼 사막에서 돌아온 이의 모래먼지 같은 흐린 눈빛 속에는 그 무엇도 들어 있지 않을 것이다.

-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 중에서
(김태형 지음 / 마음의숲 / 346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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