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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콩깍지
민해를 낳기 전, 산모인 저보다 불안해했던 사람은 의사였습니다. 첫애가 다운증후군 장애아라는 것을 안 의사가 얼마나 저를 한심하게 여기는지…… 제가 해야 할 말을 마음속으로 조용히 정리하고 있을 때, 의사가 물었습니다. “첫 애기 땐 양수 검사 하셨나요?” “아뇨.” “근데 이번에 또 안 하셨다구요?” “네.” “허, 참.” 혀를 끌끌 차는 의사.

대화가 원점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저는 천천히 말문을 열며 민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채 장애아의 엄마가 되었지만 지금 우리 가족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며 행복하게 산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행여 한 번 더 장애아를 주신다 해도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으니 한 번 더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난감해하는 의사에게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불안해하지 마세요.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건 하나님의 뜻이지 선생님의 잘못이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출산…… 민해는 건강했고 출산 과정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여름 햇살이 서둘러 종이 창호를 두드리는 새벽녘, 아직 달게 자고 있는 첫아이 민서와 둘째 민해, 두 녀석을 바라보며 생각에 들곤 합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생각은 많아졌으되 여전히 엉성하고 서툴게 아이들을 기르고 있는 저를 보게 됩니다.

첫째 민서를 낳은 지 삼칠일 만에 친정으로 갈 때였습니다. 세상이 온통 먹빛이던 그때, 저는 차창으로 스치는 코스모스를 보고 울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불행해졌는데, 앞으로도 행복해질 날이 없을 것 같은데, 저 꽃들은 왜 저리 아름다울까?’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종종 민서를 업고 나와 세상의 꽃들을 함께 보곤 합니다. 꽃들…… 저토록 작고 여린 것들이 걸을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글을 쓸 수 없어도 세상에 얼마나 소중한 아름다움을 전해 주고 있는지를 민서와 함께 보는 것입니다.

이번 추석 명절에 시댁에서의 일입니다. 옆에서 까불까불 놀던 민서가 어느 순간에 보이지 않아 큰일 났다 하고 여기저기를 찾다가 안방을 살짝 엿보았습니다. 그런데 낮잠을 자는 큰아주버니 옆에서 민서가 팔베개를 하고는 바싹 달라붙어 함께 자고 있었습니다. 큰아주버니는 한참 전에 주무셨으므로 민서를 안고 가서 재웠을 리는 없고, 민서가 제 발로 찾아가 팔을 베고서 함께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자 콧날이 시큰해졌습니다. 그토록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민서가 대견했습니다. 자상함과는 거리가 먼 분인 줄 알았는데, 숨어 있는 큰아버지의 사랑을 민서가 끄집어내어 온 식구들 앞에서 얼마나 다정다감한 분인지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민서는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아이이기도 하지만 사랑을 볼 줄 아는 아이이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사랑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있습니다. 민서와 눈을 마주한 사람 가운데 얼굴 근육을 풀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낯선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아주 잠깐 측은한 눈빛을 띠기도 하지만, 5분만 민서를 바라보고 있어도 그 표정은 금방 달라지고 맙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저 자신이 남 앞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인데, 민서 앞에서는 꼼짝없이 사랑을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전혀 몰랐습니다. 제가 아이를 이렇게 사랑하게 될 줄, 민서뿐 아니라 다른 장애아들까지도 말입니다.

민서는 돌을 막 지냈지만, 여느 아이들과 달리 아직 서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민서가 늦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천천히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자라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을 좀 더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고, 자라는 모습 하나하나를 더 유심히 지켜볼 수 있습니다.

저는 민서가 장애인이라고 해서 넘치는 보호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차별에 주눅 들지 않고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민서 스스로 자신의 자리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중심을 잘 잡고 산다는 것은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 빈부를 떠나, 나이와 학식과 연륜을 떠나 누구에게든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중심 한 번 놓쳐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은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민서가 자신의 자리에서 중심을 잘 잡고 사는 것을 보며 누군가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그 삶에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그때쯤이면 하나님이 민서를 세상에 보내신 까닭과 그 계획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래도 콩깍지』 중에서
(추둘란 지음 / 소나무 / 284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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