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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빛나게 하는 작은 친절
나는 친절한 사람이 좋다. 그게 몸에 밴 예의든 아니면 가식으로 가득 찬 연기든 상관없다. 의외로 이 세상에는 처음 만나는 이에게 친절한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특히 비행기 안에서는 훨씬 더 그렇다. 비좁고 답답한 공간은 원래 미소 가득한 사람마저도 불편하고 짜증스럽게 만들어버린다.

특히 장시간 비행을 해야 하는데 내 옆에 거구의 승객이 앉거나, 맨 뒷좌석에 자리가 배정되거나 하면 그 짜증은 극에 달한다. 마음에 둔 기내식 메뉴가 이미 동이 났다거나, 원하는 음료가 없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 팔걸이를 자꾸만 침범하는 저 낯선 팔뚝이 미워지고, 좌석을 너무 젖혀서 머리가 내 가슴에 닿을 것처럼 다가오는 무례한 이들도 넘친다.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영원히 사라질 것 같지 않은 길고 긴 줄을 보며 통로에서 서성거리는 것도 그렇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10분이라도 출발이 딜레이되면 타이트한 경유편의 승객들은 초조함으로 야단이 난다. 그저 웃고 넘겼을 아주 사소한 실수나 어긋남에도 모든 신경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모든 짜증과 불만과 불평이라는 감정들을 승무원이라는 쓰레기통에 마음껏 집어던진다. 그러나 승무원인 나도 인간이지 쓰레기통이 아니다. 나조차도 가끔은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 승객들에게 질리고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자신에게 또는 타인에게 여전히 친절함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비행을 하면서 만났던 한 커플이 생각난다.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성 승객 한 명이 기내 화장실 앞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다. 함께 동승한 남편의 말로는 장례식을 준비하느라 3일째 잠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했다. 이제 겨우 스물이 갓 넘은 아들의 장례식이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오랫동안 앓았던 지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퀭한 눈에서 자식을 잃은 아비의 슬픔을, 그리고 부인마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보았다.

다행히 그녀는 의사의 진단 후 산소를 공급받고 나서 기력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그 두 사람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내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상실과 부재의 아픔을 그들은 애써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퍼스트클래스석에 앉아 있던 젊은 커플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다가왔다. 필요한 것이 있는가 싶어 물어보려는데, 세련된 양복을 입은 남자가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 분께서 많이 아프신 것 같은데, 저희가 자리를 양보할 테니 남편 분과 함께 앉으시라고 좀 전해주시겠어요?”


자기들이 그 부부가 있는 자리에 착석할 테니, 그 부부를 퍼스트클래스석에 보내달라는 부탁이었다. 180도 눕혀지는 좌석에 이불과 베개도 준비되어 있으니, 누워서 편히 비행을 하라는 배려였던 것이다. 비행기는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여정이었고, 이제 막 이륙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비행시간의 5분의 1도 지나지 않았던 셈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지금 상당한 금액으로 구입했을 것이 분명한 두 개의 프리미엄 좌석을 그들에게 양보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비행기 끝 쪽에 앉아 있던 부부에게 다가가 상황을 설명했다. 부부는 서로의 손을 붙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을 둥그렇게 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Are you sure(정말이세요)?”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연거푸 말했다.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낯선 이와 낯선 이가 만나 만드는 이 아름다운 순간.


이렇게 일상에 불쑥 끼어드는 친절은 매우 강렬하다. 내가 직접 당사자가 된 경우도 그렇지만, 그 친절이 오가는 행위를 바라보는 것 또한 만만치 않게 큰 여운을 갖게 되는 것이다. 특히 가족과 친구가 아닌 낯선 이에게 친절을 베푼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해서 그때까지 내 울타리만을 다듬고 가꾸기에 급급했던 이기적인 내게 큰 파동을 남겼다. 그건 어쩌면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강한 진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이토록 선이 가늘고 미려한 친절이라는 이름의 악기는, 언제든지 눈을 감고 그 아름다운 연주를 감상하고 싶게 만들곤 한다.

- 『그저 나이기만 하면 돼』 중에서
(노경원 지음 / 시드페이퍼 / 244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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