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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우는 법

<흙> - 문정희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은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웃을 일은 점점 없어지고 울 일은 차츰 많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울려고 하면 울음이 나오지 않는다. 남수단에서 봉사와 선교활동을 한 이태석 신부의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 마 톤즈>를 보며 눈물을 흘려본 이후 나도 거의 울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영화에 나오는 한 수사의 말에 의하면, 남수단 사람들은 거의 울지 않는단다. 자유와 생명을 위협하는 극악의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강인한 정신이 필요할 것이고, 그래서 남수단 사람들은 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태석 신부가 그들을 울리는 걸 보면 그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하고 깊은가를 알 수 있단다.

이태석 신부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남수단 사람들은 울면서도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울음을 참느라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 울음은 절대로 울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뚫고 올라온 진한 울음이었다. 울음은 본능적이고 원시적인 힘을 지니고 있어서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는다. 온몸의 힘이 눈물로 모여 눈과 목구멍으로 강제로 밀고 올라올 때 그것을 억누르려는 정신이나 의지는 한없이 약해진다.

그러나 한참 울고 나면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깨끗하게 씻긴 듯 상쾌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울음에는 ‘맛’이 있다고 했나 보다. 아들을 먼저 보냈던 박완서는 ‘정말 비통할 때는 눈물이 잘 안 나오다가도 슬픔에 적당히 감미로움이 섞이면 울음이 잘 나온다’면서 울음에 ‘달착지근한 맛’이 있다고 얘기했다.

시를 읽고 쓰는 것도 우는 방법의 일종이다. 얼굴과 입은 울지 않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격렬하게 우는 형식이라고 할까. 시인이 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는’ 것을 느끼는 이유는 마음에 이미 울음이 잔뜩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쌓이기만 한 채 배출되지 못한 울음이 막 터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한 울음, 그 간절함이 흙에서 ‘흙 흙 흙’ 하는 소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내주기만 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흙은 어머니를 닮았다. 열매와 짐승과 사람에게 다 퍼주고도 밟히기만 한다는 점에서도, 그들의 똥오줌을 받아내 제 안에서 삭이기만 한다는 점에서도, 흙은 어머니를 닮았다. 어머니가 되어본 사람이라면 흙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고, 심장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눈물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제 몸의 양분과 정기를 씨앗에게 부어 아이를 낳고 제 몸과 영혼을 팔아 아이를 기르고도 받을 것은 거의 없고 줄 것은 앞으로도 많이 남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중에서
(김기택 지음 / 다산책방 / 316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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